뉴버전으로 업데이트된 삼국지(三国志)--1회, 2회
삼국지 인물열전(1)
연재를 시작하며
소설 삼국지에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지략과 무용을 펼치는 비중 있는 인물만도 수백 명에 달하는 바, 갖가지 전형의 인간상이 원형 그대로 담겨져 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대로, 실패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대로 그 전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인간학 연구의 보고(寶庫)가 되고 있다.
삼국지를 처음 대하는 사람은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기억하는 데 질려서 책에서 손을 놓기가 십상이다. 삼국지를 여러 번 읽은 사람도 그 수많은 인물들을 기억하는 데 애로를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이들 주요 인물들의 활약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앞으로 삼국지 인물열전을 통해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 첫 순서로 지휘관의 유형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호랑이가 이끄는 양의 군대는 양이 이끄는 호랑이의 군대를 이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지휘관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군사격언이다. 지휘관이라 함은 원래 중대(中隊)급 이상의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를 뜻하는 군사용어이지만, 여러 사람을 지휘하거나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통칭한다. 여기에는 회사의 경영자나 각급 관리자는 물론, 한 나라의 최고책임자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다.
지휘관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덕장(德將), 지장(智將), 용장 또는 맹장(勇將=猛將) 등으로 분류된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이 기준에 따라 분류해 보면 유비나 손권은 덕장, 조조나 제갈량은 지장, 여포나 장비는 용장으로 꼽을 수 있다.
몽고메리 원수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신출귀몰하던 사막의 여우 독일의 롬멜 장군의 전차병단을 물리친 영국군 최고의 지휘관이다. 그는 한 독일장군의 이론을 인용해 아주 간단명료한 기준으로 지휘관을 분류했다. 그의 이론은 모든 지휘관은 ‘똑똑함(총명함)과 멍청함(어리석음)’ ‘부지런함과 게으름’ 중에서 각각 한 가지씩을 갖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도출해 낼 수 있는 지휘관의 유형은 다음의 4가지다.
(1)똑똑하고 부지런한 지휘관(똑부) : 총명하고 부지런하므로 고급 참모에 적합하다. 명석한 두뇌에다 투철한 충성심, 그리고 성실함까지 갖추고 있는 제갈량이 표본적인 예이다.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지휘관으로서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이지만, 이런 지휘관은 스스로도 피곤하고 그를 따르는 부하들도 피곤하게 한다.
(2)똑똑하고 게으른 지휘관(똑게) : 두뇌회전이 빨라서 상황판단이 정확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기 때문에 고급 지휘관에 적합하다. 세(勢)를 정확히 읽는 안목과 여유, 최고 지휘관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조조 같은 인물이다. 때로는 전격적으로 행동하지만 웬만한 보고는 무시할 줄도 안다.
(3)멍청하고 부지런한 지휘관(멍부) : 늘 무언가를 열심히 시키고 또 열심히 하지만 실익(實益)이 없기 때문에 지휘관으로는 부적합하다. 유비를 꼽고 싶다. 부하들을 이끌고 중원을 열심히 헤매고 다녔지만 얻은 것이 없다. 제갈량의 도움으로 촉을 세우지만 관우의 죽음에 흥분하여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할 오를 정벌하려다 실패하고 죽는다.
(4)멍청하고 게으른 지휘관(멍게) :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적소(適所)에 배치하면 그런 대로 쓸 수 있다. 하진 같은 인물이다. 하 황후를 누이로 둔 덕분에 대장군이 됐지만, 그의 명령 한 마디로 쉽게 처단할 수 있는 궐 안의 십상시(환관)를 토벌하기 위해 멀리 있는 군웅들을 불러들였다가 결국 제 목이 떨어진다.
몽고메리 이론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고급 지휘관으로 적합한 인물은 제갈량 같은 인물이 아니고 조조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둘째, 하진 같은 지휘관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높이 오를 수 없고, 게으른 탓에 부하들을 닦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유비 같은 지휘관보다 덜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진은 저 혼자 죽고 말았지만 어리석고 부지런한 유비는 부하들을 이끌고 중원 천지를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가.
여기서, 몽고메리 이론의 진가를 음미해 볼 수 있는 고사 하나를 소개해본다. 포악한 독재자 동탁이 자신의 애첩을 몰래 희롱하던 부하장수 여포를 죽이려 했을 때 이를 말리고자 동탁의 참모인 이유(李儒)가 들려준 고사이다.
어느 날 밤, 초나라의 장왕(莊王)이 초성에서 무장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갑작스런 돌풍으로 연회장의 등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이때, 자리를 돌며 여러 장수들에게 술잔을 올리던 장왕의 애첩에게 한 장수가 무엄하게도 뽀뽀를 했다. 애첩은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그 장수의 갓끈을 뽑아 쥐고 장왕 쪽으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일러 바쳤다.
“전하, 이 중에 어둠을 미끼로 제게 못된 짓을 한 장수가 있습니다. 빨리 불을 켜고 그 장수를 찾아 처벌하십시오. 갓끈이 없는 장수가 범인입니다.” 그 장수는 꼼짝없이 잡혀서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었다. 시신(侍臣)이 막 등불을 켜려고 하자, 장왕은 ‘잠깐!’ 하면서 ‘아직 불을 켜지 마라. 이곳은 제장들을 격려하는 자리이니 제장들의 즐거움은 곧 나의 즐거움이다. 주석(酒席)에선 이런 일도 있는 법, 제장들은 지금 즉시 갓끈을 뽑아버려라.’하고 명을 내린다.
그리하여 애첩의 기지도 헛되이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최고 지휘관으로서 이만한 결단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지휘관을 만나면 죽을 사람도 산다. 나무는 큰 나무 밑에 있으면 치여서 자라지 못하지만 사람은 큰 사람 밑에 있으면 같이 큰다.
그 후 장왕이 진나라와의 전투에서 포위돼 옥쇄(玉碎)할 위기에 처했을 때, 한 장수가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들어와 장왕을 구해주고 쓰러졌다. 장왕이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그대는 누구이며, 어찌하여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나를 구해 주었느냐?” 독자들은 아마 이 장수가 누구인지 짐작하리라.
“저는 그때 초성의 연회자리에서 전하의 애첩에게 불측한 짓을 했던 바로 그 치한입니다. 그때 죽을 목숨이 대은을 갚고 이제야 죽습니다.”하고 숨이 끊어졌다고 한다. ‘갓끈을 끊은 회합’이라는 뜻의 ‘절영회(絶纓會)’라고 전하는 고사이다. 제 목숨을 돌보지 않는 부하를 가진 지휘관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당시의 실권자인 동탁에게도 이런 지혜를 들려주는 참모가 있었건만 불행하게도 동탁은 애첩의 농간에 놀아나 결국 그의 오른팔인 여포에게 참살당하고 만다.
지휘관에게 있어서 총명함이, 또 여유를 잃지 않는 슬기로운 상황판단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그것이 본인 스스로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부하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 참고로 위 글은 작가 최용현의 삼국지 인물열전의 글임을 밝히며 앞으로 58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오니 많은 애독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 http://cafe.daum.net/shyangg777/d1C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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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열전(2)
1장 난세에 일어난 군웅들 ① '장각'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시대이든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이상한 종교가 생겨나고, 고달픈 백성들은 그런 종교에 빠져든다.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후한 말기에도 어김없이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쌀 다섯 말[斗]을 바치면 무슨 병이든 고칠 수 있다는 교리를 내세운 오두미도(五斗米道)가 위세를 떨치더니, 다시 전래의 도교에다 민간신앙을 교묘하게 접목시킨 태평도(太平道)가 나타나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에 번져갔다.
태평도의 교주 장각(張角).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청년이 된 장각은 어느 날 산에 약초를 캐러갔다가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는 도인을 만났는데, 그 도인은 장각을 데리고 어떤 동굴로 들어가 천서(天書) 세 권을 주면서 이렇게 일러주었다.
“이것은 ‘태평요술’이라는 책인데, 여기에 적혀있는 것을 잘 익혀서 세상에 나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도록 하라. 만일 딴 뜻을 품을 때는 화를 면치 못하리라.”
그때부터 장각은 이 책을 보며 혼자서 수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장각을 무슨 도사처럼 떠받들었고, 그의 집에는 소문을 듣고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로 성시(盛市)를 이루었다.
그 즈음, 중원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그의 마을에도 하루에 몇 사람씩 죽어갔다. 장각의 제자들은 각 고을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에게 주술로 된 처방을 주었는데 대부분 신통하게 나았다. 백성들은 태평도만 믿으면 병이 낫는다고 여겨 따르는 무리가 구름처럼 불어났고, 그의 명성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아무데도 의지할 곳 없는 병들고 굶주린 백성들의 구세주였던 것이다.
민심을 얻는 데 성공한 장각은 스스로를 대현량사(大賢良師)라 칭하고 두 아우를 장군으로 임명하는 한편,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군사조직으로 편성했다. 전국에 36지부를 두고 큰 지부는 만 명이 넘는 군사를, 작은 지부도 수천 명의 군사를 양성하여 그의 군세(軍勢)는 일약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
그는 항상 머리를 누런 수건으로 싸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군사들도 모두 이를 본뜨게 되었고, 군기(軍旗)는 모두 황색기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는 천하를 뒤엎을 거사계획을 세운다. 드디어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蒼天己死(창천기사)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黃天當立(황천당립) 마땅히 누런 하늘이 서리라
歲在甲子(세재갑자) 때는 바야흐로 갑자년이니
天下大吉(천하대길) 중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황건적이 만들어 퍼뜨린 노래이다. 그들의 군가인 셈이다. 세 살 먹은 아이들까지도 이 노래를 따라 부를 만큼 이들의 위세는 중원을 휩쓸었다. 장각은 자신에게 대항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죽여서 재산을 빼앗고, 복종해오는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약탈을 장려했다. 황건적은 가는 곳마다 관청을 습격, 관리를 죽이고 양곡을 약탈하여 나누어 가졌다. 지방의 성주들은 매일 불안에 떨며 황성(皇城)에 구원을 요청했다. 지방에 있는 군사들은 기강도 형편없는 데다,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도저히 황건적을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중앙정부에서는 대규모의 관군을 편성하여 황건적 토벌에 나섰다. 동탁 원소 조조 손견 등 후일 천하를 다투게 되는 군웅들은 관군의 이름으로 출전하게 되었고, 도원결의로 의형제가 된 유비 관우 장비도 의병을 일으켜 황건적 토벌에 참여하게 된다. 황건적의 난은 이들 모두에게 세상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기세 좋게 중원을 휩쓸던 황건적이 관군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총수 장각이 병을 얻어 갑자기 죽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아우인 장량 장보 형제가 끝까지 용감하게 싸웠으나 참패를 거듭하다 모두 전사하고 만다. 수뇌부가 붕괴되자 대세는 이미 기울어 주력부대들은 대부분 토벌되거나 흩어져 버렸고, 소규모 부대들만 남아서 국지적인 저항을 하다가 소멸되고 말았다.
대규모의 농민봉기인 황건적의 난이 이처럼 쉽게 무너지고 만 것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갑자기 봉기한 점과, 지도자 장각의 돌연한 병사(病死)에서 주요원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가족들을 거느린 채 싸워야 하는, 무기도 변변히 갖추지 못한 농민군이 조정의 관군을 상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은 베푸는 행위에서 다스리는 행위로 조직의 목표와 기능이 급격히 변질된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이비 종교집단이 으레 그러하듯이 황건적도 처음에는 굶주리고 병든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해줌으로써 민심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을 뒤엎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관청을 습격하고 백성의 재산을 약탈, 살육을 자행하면서부터는 민심이 다시 돌아서버린 것이다. 민심이 따르지 않는 혁명이 실패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황건적이 전부 토벌되었어도 후한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기울어가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십상시라 불리는 환관들이 권력을 독점하여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었고 백성들은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황제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으니 한(漢)의 4백년 제업(帝業)도 안에서부터, 또 위에서부터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장각은 왕조 말기 격동의 시대를 헤쳐 나갈 지도자로서는 여러 가지 점에서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가 처음의 순수했던 이상을 끝까지 지키는 종교지도자로 남았더라면 병들고 굶주린 백성들을 구한 고귀한 이름으로 후세에 길이 남았으리라.
어쩌면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역할은 삼국지 전야의 군웅할거시대가 열리는 터전을 마련해놓고 조용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후일 삼국지를 이끌어가는 기라성 같은 군웅들이 거의 다 황건적의 난 때 힘을 기르고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 최용현의 삼국지 인물열전→ http://cafe.daum.net/shyangg777/d1C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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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다른 좋은 사진이 찾아지면 바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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