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 (三国志)

뉴버전으로 업데이트된 삼국지(三国志)--3회, 4회

벡크 2016. 3. 28. 12:36

삼국지 인물열전(3)

1장 난세에 일어난 군웅들 ② '하진' 



사람은 자신의 역량에 합당한 자리가 주어졌을 때 최대의 기량을 발휘한다. 기량의 크기가 자리(職位)보다 현저하게 크거나 현저하게 작으면 문제가 생긴다.


전자의 경우는 제갈량에 버금가는 준재로 꼽히던 봉추(鳳雛) 방통이 대표적인 예다. 처음에 시골 현령을 맡겼을 때는 매일 술만 마시며 세월을 보내더니, 나중에 서촉 정벌군의 군사(軍師)로 임명했을 때는 발군의 지략으로 큰 공을 세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 즉 기량의 크기에 비해 직위가 현저하게 높을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아보자. 이의 예를 미모가 출중한 누이 덕분에 벼락출세한 대장군 하진의 부침과정을 통하여 살펴보면서, 아울러 삼국지의 서장(序章)이 열리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후한 말기, 황건적의 난을 겨우 평정한 조정의 권력은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는 환관들에게 독점되어 매관매직이 성행하는 등 부패가 극에 달해 있었다. 허수아비 황제인 영제(靈帝)는 그저 여색이나 탐할 뿐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이 무렵 황제가 건드린(?) 후궁 하 씨가 황자 변을 낳았다. 그러자 황제는 황후를 쫓아내고 후궁 하 씨를 황후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 황후의 오라비인 하진은 원래 소와 돼지를 도축하는 백정이었으나 누이 덕분에 갑자기 조정으로 불려와 벼슬을 하게 되었다. 황후인 누이 덕분에 하진의 벼슬도 나날이 올라갔고, 장각이 주도하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드디어 대장군에 임명되어 반란 진압의 총책임을 맡게 되었다. 단숨에 군부를 손아귀에 넣게 된 것이다. 


그 후 후궁인 왕 씨가 황자 협을 낳자, 하 황후는 변 황자의 장래를 위해 후궁 왕 씨를 독살하고, 황제의 모후인 동 태후에게 협 황자를 기르도록 하였다. 협 황자는 영특하고 총명하여 황제는 물론 십상시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중병에 걸린 영제는 협 황자를 태자로 삼아 대통을 잇게 하고 싶었으나, 군권을 쥐고 있는 처남 하진 때문에 눈치를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십상시들도, 변 황자가 대통을 이으면 더욱 기세등등해질 대장군 하진이 언제 자기들에게 칼을 들이댈지 모르기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영제가 갑자기 승하하자, 하진은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건석을 살해하고 누이의 아들인 변 황자를 황제로 즉위시켜(少帝) 드디어 조정의 대권을 거머쥐었다. 권력투쟁에서 외척세력이 환관세력을 누르고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때 하진의 막하에는 후일 군웅이 되어 패권을 다투게 될 청년시절의 원소 원술 조조 등 신진관료 엘리트들이 모여 있었다. 이참에 환관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아 조정을 어지럽히는 화근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하진은 계속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근위무관 원소가 한 가지 계책을 내었다.


“사방의 군웅들에게 격문을 보내 그들의 군사로 하여금 환관들을 해치우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각지의 군웅들이 몰려와 조정에 칼을 들이댈지도 모른다고 간하는 참모들이 있었지만, 타인의 손으로 환관들을 쓸어버리자는 원소의 말에 하진은 눈이 번쩍 띄었다. 자신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구석 자리에 앉아있던 풋내기 무관 조조는 감히 나서지도 못하고 홀로 한숨을 쉬며 탄식하고 있었다.


 “형리(刑吏)에게 명하여 환관들을 잡아들이면 될 것이지, 각지의 군웅들을 불러들여 화를 자초한단 말인가….”


결국 대장군 하진의 이름으로 띄운 격문은 각지의 군웅들에게 보내졌고, 서량자사 동탁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2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 외곽에 도착, 도성 안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병주자사 정원도 맹장 여포를 앞세우고 낙양으로 향하고 있었고….


한편, 십상시들도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 하 태후에게 빌붙어 목숨을 구걸하는 한편,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하진을 제거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십상시들은 하 태후의 친서를 받아내어 하진에게 속히 입조하라고 전갈을 보냈다. 누이의 친서를 받은 하진은 십상시들의 함정일 거라며 입조하지 말라는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세를 부렸다.


“무슨 소리야? 천하의 병권이 지금 내 손안에 있는데, 십상시 따위가 감히 나를 어쩐다는 말이냐?”


하진은 호위병 5백 명을 대동하고 궁궐로 들어갔다. 그러나 궁문을 지키는 환관이 ‘태후마마께서 대장군 혼자만 들어오라고 하셨다.’면서 하진만 들여보내주는 바람에 호위병들은 장락궁 밖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혼자 걸어 들어가는 하진의 등 뒤에서 갑자기 벼락같은 고함 소리가 났다.


“개백정, 게 섰거라!”


하진은 순간 ‘아차!’ 싶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사방에서 튀어나온 십상시측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순식간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하진의 호위병들은 격분하여 궁궐에 불을 지르고 환관, 궁녀는 물론 그 가속들 2천여 명을 무참히 죽이는 변란을 일으켰다. ‘장락궁의 피바람’으로 불리는 이 난리통에 진시황 이후 4백년이 넘게 황제에서 황제에게로 이어져온 옥새가 없어졌다. 옥새 없는 황제, 이제 후한도 완전히 망조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 와중에서도 재빨리 몸을 피하여 살아남은 일부 십상시들은 황제와 그의 이복아우 협(진류왕)을 납치하여 궐 밖으로 달아났다. 그러다가 황제 일행은 낙양 교외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동탁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입궐하게 되고….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모가 출중한 누이 덕분에 대권을 잡은 대장군 하진, 그의 막하에서 원소 조조 같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보필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조언을 듣지 않고 좌충우돌하다가 외지의 군웅들을 도성으로 불러들여 놓고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


출신이야 어떠했던 간에, 하진의 역량 여하에 따라 후한말의 난세는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그릇과 기량은 기울어지는 왕조의 대권을 맡기에는 너무나 작고 부족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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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열전(4)

1장 난세에 일어난 군웅들 ③ '동탁' 

 


진시황 수양제 히틀러 스탈린 후세인…. 세계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폭군과 독재자들의 이름이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매스컴이나 대중을 동원한 여론조작에 능하다는 점, 타협이나 논리, 정당성 같은 이성적인 것을 싫어한다는 점, 적대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공포정치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삼국지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동탁도 그런 점에서 당당히 독재자의 반열에 낄 만한 인물이다. 아니, 오히려 이들보다 더한 이력을 한 가지 더 갖추고 있다. 보통의 독재자들이 적대세력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일반 국민들에게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던 데 비해, 동탁은 적대세력은 물론 민중들도 무자비하게 억압하였던 것이다.


그가 대권을 잡는 과정과, 잡고 나서의 행적 그리고 몰락과정을 살펴보자. 


동탁(董卓), 자는 중영(仲穎). 섬서성 출신으로 키가 크고 몸집이 육중했으며 가는 눈매에 재지(才智)가 번뜩이는 사나이. 어릴 때부터 힘이 장사여서 활통을 말 양쪽에 매달고 달리면서 좌우 어느 쪽 팔로도 활을 쏠 수 있었는데, 쏘았다 하면 백발백중이었다고 한다. 변방의 오랑캐인 강족 토벌에 큰 공을 세우면서 중앙에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그는 황건적과의 전투에서 여러 번 패하여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조정의 실세인 십상시(十常侍)에게 뇌물을 주고 서량자사로 임명되면서 다시 기사회생한다. 한조의 멸망을 예감한 그는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변방에서 20만 군병을 양성하면서 천하를 움켜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사위인 모사(謀士) 이유와 이각 곽사 장제 번조 등 강맹하기로 이름난 네 장수가 포진하고 있었다.


드디어 대장군 하진으로부터 도성으로 들어와 십상시를 토벌하라는 격문이 오자,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동탁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향한다. 이때 도성에서는 십상시에게 죽임을 당한 하진의 부하들이 환관들을 무참히 살육하는 참사가 일어났고, 난을 피해 궁궐 밖을 전전하던 황제 일행은 동탁군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입궐한다. 대권이 너무도 쉽게 동탁에게 굴러들어온 것이다.


실권자가 된 동탁은 군대를 풀어 도성에 온통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반대파를 과감히 처단한다. 처음엔 여포를 데리고 온 병주자사 정원이 그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희대의 명마인 적토마로 여포를 매수하자 이젠 동탁의 뜻을 거스를 사람이 없었다. 이에 동탁은 소제(少帝)를 폐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아홉 살짜리 진류왕을 새 황제[獻帝]로 옹립하니 이제 천하가 완전히 동탁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동탁은 철저히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폐제(廢帝)와 황비(皇妃), 그의 모후인 하 태후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 시체를 아무렇게나 묻어버리게 했다. 또 자신에게 대항하는 사람은 무조건 잡아 죽이니 조정의 백관들은 넙죽 엎드려 목숨을 보전하기에 바빴다. 그는 제위에 버금가는 영화를 누리면서도 심심하면 사람을 죽이는 가학적인 광란 증세를 보였다.


어느 봄날, 동탁이 수십 명의 미녀를 마차에 태우고 성 밖 매원(梅園)을 지나고 있을 때, 마침 고을의 축제일이라 청춘남녀 한 쌍이 곱게 차려입고 마차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를 본 동탁이 ‘농사꾼 주제에 밭에 나가 일하지 않고 돌아다니니 괘씸하다’며 군사들에게 그들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군사들은 두 사람의 손발을 네 필의 소에 매달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거열형(車裂刑)]. 두 사람의 사지가 떨어져나가며 흘린 피가 매원을 붉게 물들였다. 이를 본 동탁은 ‘오늘은 꽃구경보다도 더 재미있는 구경을 했구나’하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원소 조조 손견 공손찬 등 각지의 군웅들이 연합군을 구성해 맞서보았으나 내분으로 실패하고 만다. 동탁은 도성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한편, 장안 교외에다 으리으리한 새 궁궐 미오성을 지었다. 그 안에 20년 치의 군량과 보물을 저장해놓고 미희 800명을 뽑아 밤낮없이 주지육림 속에서 살았다. 그는 일가붙이를 모두 조정의 요직에 임명하여 그의 눈과 귀가 되도록 해놓고 제위를 찬탈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는 미오성에 기거하면서 보름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장안으로 출사했다. 그의 수레가 지나가는 연도에는 모래를 깔고 보호막을 치는 등 법석을 떨었고, 조정의 중신들은 모두 나와서 도열했다. 민가에서는 밥 짓는 연기마저 피우지 못하고 그의 수레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었다. 혹시라도 그의 눈에 거슬려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하늘을 찌를 듯한 그의 위세도 조정의 원로인 사도(司徒) 왕윤과 그의 수양딸 초선이 주도면밀하게 연출한 미인계(美人計)와 연환계(連環計)에 빠져 부하인 여포에게 목이 떨어지면서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그의 나이 54세, 대권을 잡은 지 3년만이었다. 


동탁이 죽자 장안의 백성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의 머리는 차고 노는 축구공이 되었고, 그의 목 없는 시신의 배꼽에는 심지를 박아서 불을 붙였는데 뱃가죽이 얼마나 기름졌던지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백성들의 원한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적대세력을 억누르고 국민들을 억압하는 데는 공포정치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러나 공포를 수단으로 정치를 하려면 강력한 자극을 주는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공포감도 반복되면 마비현상이 생기게 되어 웬만한 자극으로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독재자는 차츰 광란적인 가학심리에 빠지게 되는데, 그 방법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적대세력을 더욱 단합하게 만들어 결국 자기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만다. 이것이 공포정치의 귀결이다.


세계사에서 보아온 독재자들의 말로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처참한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자신이 뿌려놓은 죄과에 대한 업보이다. 그런 점에서 포악한 독재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동탁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최용현 http://cafe.daum.net/shyangg777/d1C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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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ゝ三国志(さんごくし)は、中国後漢末期から三国時代にかけて群雄割拠していた時代(180年頃 - 280年頃)の興亡史である。

https://ja.wikipedia.org/wiki/%E4%B8%89%E5%9B%BD%E5%BF%97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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