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58부 -- 오 나라의 인물들 : "손견의 4대천왕" '한당/황개/정보/조무'
삼국지/58부
오 나라의 인물들
"손견의 4대천왕" '한당/황개/정보/조무'
중국에는 4대천왕이 있다. 홍콩에서 활약하는 '유덕화, 여명, 곽부성, 장학우' 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1800년 전 중국에 이미 4대천왕이 있었다. '회계'에서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황제를 칭한, 허창이란 도적을 치기위해 '강동'의 호랑이 손견이 의군을 모집했을 때 찾아온 네 장수 한당, 황개, 정보, 조무가 바로 그들로 원조 4대천왕인 셈이다.
"한당(韓當)"☞ 자는 의공(義公).
곰의 어깨에 범의 허리를 갖춰 날렵하면서 용력이 남달랐다. 가장먼저 손견에게 달려왔으며 말타기 와 활쏘기에 능했고 특히 큰칼(大刀)을 잘 썼다.
"황개(黃蓋)"☞ 자는 공복(公覆).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장작을 내다 팔며 가난하게 살았으나 서책을 가까이 하며 병법을 익혔다. 생각이 깊고 참을성이 많은 데다 쇠채찍 철편(鐵鞭)을 잘 썼다.
"정보(程普)"☞ 자는 덕모(德謀).
지방의 관리 출신이며 외모가 수려했다. 무예와 지략에 고루 능했고, 특히 철척사모(鐵脊蛇矛)를 잘 써서 황개의 철편과 좋은 짝을 이루었다.
"조무(祖茂)"☞ 자는 대영(大榮).
손견과 같은 '오'군 출신으로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 났으며 책임감이 강했다. 손견의 심복 장수로서 친위대를 이끌었으며 쌍칼(雙刀)을 잘 썼다.
이들 4대천왕은 손견을 주군으로, 겨우 두살인 아들 손책을 작은 주인으로 모시기로 의기투합 했다. 실제로 이들은 큰아들 손책은 물론 그 뒤를 이은 작은아들 손권까지 3대째 충성을 다한다.
무예가 출중하고 충성심이 강한 네 장수는 '강동' 일대의 도적들을 평정하며 무명(武名)을 떨쳤다. 이들이 중앙무대에 진출한 것은 공포정치를 일 삼던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17제후들이 연합군을 구성했을 때 였다. 장사태수 손견을 따라 연합군의 선봉으로 출전한 이들은 '중원'을 누비며 용감하게 싸워 후일 '오'나라 건국의 터전을 닦았다.
그러나 여기서 4대 천왕의 한쪽 날개가 꺾인다. 동탁 진영의 맹장 화웅이 손견의 진채를 야습(夜襲)했을 때, 친위대를 이끌던 조무는 손견에게 자신의 투구를 쓰고 피하도록 하고, 자신은 손견의 붉은 두건을 쓰고 적을 유인했다. 화웅의 군사들이 붉은 두건을 보고 뒤쫓아 왔다.
쫓기던 조무는 어느 민가에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역습을 시도했다. 그러다가 적장 화웅이 내리치는 대도에 맞아 말 아래로 굴러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손견과 함께 10여 년 동안 범 같은 용맹을 떨치던 친위대장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오오! 그대가 나를 대신해 죽었구나! 이제 어디서 그대의 영걸스런 용자(容姿)를 다시 볼 수 있으리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손견은 이렇게 탄식하며 목 놓아 울었고, 4대 천왕의 한 축을 잃은 세 장수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 했다.
궁궐의 우물에서 전국의 옥새를 주운 손견은 큰 뜻을 품고 '강동'으로 돌아오다 이를 저지하는 '형주'의 유표군과 전투를 벌였다. 여기서 적의 매복계에 걸린 손견은 무참히 전사하지만, 한당은 적장 장호를 큰 칼로 제압했고, 정보는 손견을 죽인 적장 여공을 한창에 찔러 죽였다. 또 황개는 쇠채찍으로 '형주' 최고의 맹장 황조를 사로잡았다.
이때 처음 전장에 따라나선 열일곱 살의 손책은 아비 손견의 수급(首級)과 사로잡은 적장 황조를 맞바꾸어 손견을 장사 지내고 '강동'의 새 주인이 되었다. 남은 세 장수들은 손책과 함께 유요를 비롯한 엄백호, 왕랑 등 이 지역의 토호 군벌들을 모조리 평정했다.
그러던 중 자객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은 손책은 아우 손권에게 후사를 맡기고 숨을 거두고 만다. 그 후 '강북'을 통일한 조조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내려와 '적벽'대전이 벌어지자, 이제 노장이 된 세 장수들도 각 맡은자리에서 조조군과 맞서 싸웠다.
부도독인 전부(前部)는 도독으로 임명되어 대도독 주유와 함께 전군을 지휘하고 독려했다. 처음에는 아들 뻘인 주유가 상관인 대도독이 된 것이 못마땅 하여 딴죽을 걸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주유의 인품에 반해 이렇게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유와 함께 있으면 마치 맛있는 술을 마신 것처럼 나도 모르게 취하게 된다!"
한당은 조조군이 작은 배 20여 척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주태와 함께 용감하게 싸워 이들을 패퇴 시켰다. 황개는 고육계(苦肉計)를 통해 조조에게 거짓 투항하여 화선(火船) 20척을 이끌고 '위'의 선단에 돌진 함으로써 '적벽'대전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적벽'대전 이후, 이들은 주로 후방을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관우의 복수를 위해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오'로 침공했을 때 대장으로 활약한 한당을 마지막으로 이들의 이름은 삼국지에서 사라진다.
네 장수 중에서 가장 무장답게 죽은 장수는 손견을 대신해 죽은 조무이고,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한 장수는 고육계를 통하여 화공(火攻) 을 성공시킨 황개이다. 가장 높은 지위까지 승차한 사람은 부도독에 오른 정보이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넷 중에서 가장 오래 남아 활약한 한당의 아들 한종이 남긴 행보이다.
한당이 죽자, 손권은 그의 아들 한종에게 아비의 직책을 그대로 맡겼다. 그러나 한종은 군무(軍務)에는 신경 쓰지 않고 부녀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이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손권의 문책이 두려웠던 한종은 식구들과 휘하 군사들을 이끌고 '위'에 투항해 버렸다.
'위'의 장군이 된 한종은 자주 국경을 침범하여 '오'의 백성들을 괴롭히곤 했다. 그러다가 전투에 패하여 '오' 군에게 사로잡혔고 그의 수급은 손권의 묘에 제물로 바쳐졌다. 4대 천왕이 남긴 절대적 충성 행보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오점(汚點)이 아닐 수 없다.
초창기 조조에게 하후돈, 하후연, 이전, 악진 등이 있었고 유비에게 관우와 장비, 그리고 조금 늦게 합류한 조운이 있었듯이, '강동'의 손견에게도 이들 4대 천왕이 있었기에 후일 손책을 이은 손권이 삼국의 일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삼국지연의가 유비의 '촉'을 정통으로 세우지 않고 '강동'의 '오'를 정통으로 세웠다면 어쩌면 이들 4대 천왕의 이야기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못지않은 비중으로 더욱 흥미진진하게 각색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카카오 Kim Che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