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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三国志)

삼국지/62부 -- 촉 나라의 인물들 :

삼국지/62부



 나라의 인물들 

관우와 장비의 아들 ‘관흥과 장포’ 



관우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 관평(關平) 은 관우가 '하북'에서 관정이라는 사람의 집에 잠시 머물러있을 때 그의 차남을 양자로 받아들여서 얻은 아들이고, 정사에는 관평이 관우의 친자로 되어있는데 연의에서는 왜 양자로 바꿔놓았는지 알수가 없다. 


한번 살펴 볼까요?

관평은 유비의 양자인 유봉과 함께 전장을 누비고 다녔다. 유비가 '서천'을 공략 할 때, 관평은 유봉과 함께 부수관에서 유장의 부하장수 양회와 고패를 사로잡기도 했다. 


그러나 군사(軍師) 방통이 '낙봉'파에서 전사하자, 관평은 '형주'에 있는 제갈량을 모시러 가는 사자로 발탁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형주'를 지키는 관우 밑에 눌러앉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관평은 관우와 함께 '위'를 공략하다가 '형주'를 기습한 '오'의 명장 여몽에게 허를 찔려 패퇴, '맥성'에서 탈출하다가 '오'군 장수 마충에게 사로잡혀 관우와 함께 참수되고 만다. 


셋째아들 관색(關索)은, 유비가 죽고나서 다시 '오'와 친교를 맺은 제갈량이 '남만'정벌에 나섰을 때 제갈량의 군영으로 찾아오면서 등장한다.


“형주가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저는 심한 부상을 입고 숨어있었습니다. 몸이 나은 후에 알아보니 '동오'의 원수들은 모두 죽었더군요. 이제야 '서천'에 천자를 뵈러 가는 길인데, 이렇게 '남만' 정벌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제갈량은 크게 기뻐하며 그 소식을 조정에 알리는 한편, 관색을 출정군의 선봉으로 삼았다. 그는 '남만'과의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하지만 그 후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정사에는 셋째아들로 ‘관통’이 나오는데, 연의에 나오는 관색과 같은 사람인지 궁금하다.


이제 관우의 둘째아들인 관흥(關興)과, 장비의 외아들인 장포(張苞)에 대해서 알아보자.


유비는 관우가 죽고 이어서 장비마저 죽자, 함께 죽기로 맹세한 두 아우없이 자신만이 살아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오'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유비와 마찬가지로, 관흥과 장포 또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이를 갈며 전의를 불태웠다. 


관흥과 장포는 그들의 아버지가 죽은 후 부터 삼국지에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여, 항상 둘이서 같이 전장을 누비고 다니며 활약을 했다. 둘 다 활을 잘 쏘았고 무예가 출중하여 아버지들 못지 않았다. 한 살이 더 많은 장포가 형이 되고, 관흥이 아우가 되었다. 


유비는 거국적으로 군사를 동원, 관흥과 장포 두 조카와 함께 몸소 군사를 이끌고 '오'로 쳐들어 갔다. '촉'군은 이르는 곳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항복을 받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 동안 관흥과 장포는 서로 도와가며 용감히 싸워 '오'군을 패퇴시켰고, 적장 손환과 이이 등을 물리쳤다. 


이에 고무된 유비는 두 조카의 무용을 칭찬하면서 늙은 장수들은 이제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이에 마음이 상한 황충은 '오'군의 반장과 마충이 쳐들어오자 앞뒤 분별도 하지 않고 맞서 싸우러 나갔다가 '오'군이 쏜 화살에 맞아 쓰러진다. 


노장군 황충이 죽자 관흥과 장포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관흥은 홀로 떨어져 낯선 골짜기를 헤매다가 아버지의 원수인 반장을 만나 단칼에 죽이고, 아버지가 쓰던 청룡언월도를 다시 찾아온다. 


한편, 전에 관우가 위급에 처했을 때 구하기는 커녕 그를 배신하고 '오'에 항복했던 미방과 부사인은, '촉'군의 기세에 놀라 관우를 죽인 마충의 목을 베어 그 수급을 가지고 유비에게로 찾아온다. 그러나 원한에 사무친 유비는 미방과 부사인까지 목을 잘라 관우의 영전에 제물로 바친다. 


'오'주 손권은 유비를 달래기위해, 장비를 살해하여 그 수급을 '오'로 가져왔던 범강과 장달을 잡아서 묶어 '촉'에 보낸다. 이들 두 무뢰한 역시 장포에 의해 목이 잘려서 장비의 영전에 제물(祭物)로 바쳐진다.


관흥과 장포는 '오'군과의 교전에서 맹활약하며 각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원한과 분노를 씻어 낸다. 그러나 '촉'군의 승리는 거기까지 뿐이었다. '촉'의 대군은 이릉의 숲에 장사진을 쳤다가 '오'의 명장 육손의 화공(火攻)에 무참히 패퇴하고 만다. 패주하던 유비는 '백제성'에서 숨을 거둔다. 


그 후에도 관흥과 장포는 제갈량의 북벌에 참여하여 맹장 위연과 함께 선봉을 맡아 적장을 여럿 죽이거나 사로잡는다. 또 오호대장군이 사라진 '촉'군에서 그들은 자기들의 아버지 못지않은 활약을 하며 큰 공을 세운다. 


그러나 제갈량이 다시 출사표를 올리고 세 번째 '기산'으로 나갔을 때, 장포는 적장 사마의의 부장 곽회와 손례를 뒤쫓으려고 산등성이를 오르다가 말과 함께 계곡으로 떨어지게 되고, 이때 머리를 다쳐 '성도'로 후송되었다가 죽고만다.


관흥은 장포가 죽은 이후에도 제갈량 곁에서 함께 싸우며 '위'군 최고의 맹장 장합을 목문도에서 몰아붙여 죽이는 등 큰 활약을 펼치다가, 제갈량이 여섯번째 '기산'으로 나갈 무렵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관흥과 장포가 앞에서처럼 정말로 '오' 정벌에 참여하여 각자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한 것일까? 정사에 의하면 관흥과 장포 둘 다 '오' 정벌에 참여한 일이 없었다. 당연히 그 후 제갈량의 북벌에도 따라간 적이 없었다.


정사 ‘관우전’에 의하면, 관우의 아들 관흥은 어릴 때부터 무예가 출중하여 제갈량의 총애를 받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약관의 나이에 죽었다고 한다. 장포도 마찬가지이다. 정사 ‘장비전’에 의하면, 장비의 아들 장포는 장비가 죽기 전에 요절한 것으로 되어있다. 


결과적으로 관흥과 장포가 '오' 정벌에 참가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연의의 저자는 왜 그렇게 시원스런 복수극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관우와 장비의 죽음을 너무도 아쉬워한 나머지 다시 한 번 거침없는 상상력을 발휘, 그 아들들의 영웅적인 복수담을 창조해 낸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 일찍 죽어버린 아들들을 다시 살려내 복수극을 꾸민 저자의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관우와 장비가 한 쌍으로 활약했던 것처럼 관흥과 장포가 나란히 부친의 복수를 하는 설정 또한 얼마나 멋지고 보기 좋은가요!


@ 카카오 Kim Che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