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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三国志)

삼국지84부-- 병법과 전략 : "강한 군대 원한다면 배불리 먹여라"

삼국지84부

병법과 전략

"강한 군대 원한다면 배불리 먹여라"




*조조에게 최고 기회이자 대박 ‘황건적의 난’

*난 진압 후 농사 지을 땅 주고 자기편 만들어

*오랜 굶주림과 전투에 시달리던 백성들 환호

*평시엔 일 하고 위급할 땐 전쟁 투입 ‘일석이조’


"황제를 받드는 것은 시세에 순응하는 것, 곧 ‘대순 (大順)’입니다. 공정한 자세로 영웅과 호걸들을 복종시키는 것은 최대의 전략, 곧 ‘대략(大略)’ 입니다! 영웅과 준걸들이 모여들게 하는 것은 최대의 덕행, 곧 ‘대덕(大德)’입니다! 대순은 지극히 높고, 대략은 공정하며, 대덕은 의롭습니다! 그러나 이 강령을 지킬지라도 백성이나 병사들이 굶주리면 소용이 없습니다!”


조조의 모사였던 순욱의 말이다. 그렇다. 백성들은 누가 통치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누가 배불리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느냐에 민심은 쏠린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백성들을 먹이고 입히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황건적의 난으로 시작된다. 당시 날씨가 좋고 식량 생산이 많았으면 황건적의 반란은 없었을지 모른다. 소빙하기의 빈번한 기상재해가 극심한 기아를 가져왔다. 


지도자들은 백성을 먹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가진 것을 수탈했다. 

굶어 죽는 백성이 늘어나는데도 더 많은 세금을 매겼다. 세금을 내지 않는 백성들은 얻어맞고 땅을 빼앗겼다. 백성들은 힘없이 굶어 죽어 갔다. 


그런데도 지도자들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다. 백성들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태평도의 꾐에 넘어가 황건적으로 변 할 수 밖에 없었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전국의 제후들이 나섰다. 노식·주준·동탁·원소·원술·공손찬·조조· 유비 등이다. 그런데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면서 가장 수지맞았던 사람은 누굴까? 바로 조조다. 


조조는 황건적이 재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들을 평정했다. 그리고 20만 명의 대군을 거느리는 강력한 세력으로 떠 올랐다. 난을 진압한 후 황건적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나중에 조조의 정예병인 청주병이 됐다. 모든 제후들이 황건적을 진압하면서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조조에게 황건적의 난은 기회였고 대박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에게는 국가와 군대를 경영하는 전략이 있었다. 백성들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조는 힘으로 황건적을 진압하기 보다 묘책을 사용했다. 


그는 황건적 지휘자들에게 약속했다. 자신의 백성이 되면 식량도 주고 살 곳도 주겠다고 했다. 굶주리던 황건적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저항하던 황건적들이 항복을 결정했다. 


조조는 약속대로 이들에게 땅을 주고 식량을 주었다. 이들이 조조의 충성스러운 병사가 된 것은 물론이다. 조조는 이들 중 전투력이 뛰어난 병사 5만 명을 뽑아 핵심부대로 만들었다. 조조가 자랑하는 정예부대 ‘청주병(靑州兵)’이다.


그런데 조조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바로 둔전제(屯田制)의 시행이다.


“나라를 안정시키는 방도는 무엇인가? 군대를 강하게 해야 한다. 군대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풍부한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 군대가 강하지 못하고 식량이 부족한데 어떻게 적을 물리쳐 승리를 거둘 수 있겠는가?”


당시에는 농민들이 유랑민으로 떠돌다 보니 주인 없는 논밭이 많았다. 조조는 주인 없는 땅을 몰수했다. 이들 땅을 항복한 황건적 병사들에게 나눠주어 농사를 짓게 했다. 이를 군둔(軍屯)이라 한다. 밭을 갈 소와 농기구는 정부에서 제공했다. 


둔전제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대박 장사였다. 땅은 임자가 없어 거저 주웠다. 소와 농기구는 황건적들이 노획한 것을 사용했다. 세금은 5할 내지 6할의 수확물로 받았다. 한나라 초기의 15분의 1에 비하면 살인적인 폭리였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었던 황건적들은 이나마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조조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최고의 장사를 한 것이다.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었다. 경작과 전투가 일체를 이룬 새로운 군대를 만든 것은 덤 이었다. 


이 군대는 평시에는 일을 하고 위급 할 때는 전쟁을 할 수 있었다. 조조가 강력한 세력으로 급속히 떠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창조적인 전략을 구사한 조조는 삼국 중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고 역사를 좌지우지 하는 힘을 가지게 됐다. 


조조의 전략이 왜 창조적이었는가? 

다른 제후들은 반란의 원인조차 몰랐다


당시 제후들은 한마디로 식견도 미래전략도 없었다. 왜 반란이 일어났는지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 백성들을 평안하게 살게 해 줄 것인지에 대한 비전도 없었다. 자기들만 잘 살고 잘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최대 세력이었던 원소나 공손찬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병력을 육성했다. 그러나 조조는 한 번의 묘책으로 엄청난 병력을 얻었다.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는 것으로 말이다.


“여러 군대가 일제히 봉기했다. 그러나 일 년간의 식량 계획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굶주리면 약탈을 자행했다. 배가 부르면 남은 것들을 버렸다. 결국 싸운 적군이 없는데도 스스로 패배하는 자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삼국지 ‘위서’에 나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뜻 할까? 조조만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해결해 준 창조적인 지도자였다는 말이다.  


조조와 같이 훌륭한 장수는 병사에게 배고품을 주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부하직원을 행복하고 잘 살게 해 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들도 창조적인 리더로 거듭 나기를 바랍니다.


@ 카카오 Kim Cheol